아름답다 (Beautiful)

감독 전재홍 출연 차수연, 이천희 개봉 2007 대한민국, 87분 평점

아름다움을 구타하는 <아름답다>

 

시대는 미(美)를 원한다. 그러나 기준은 모호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추상적인 탐미에 의한 것이 아닌, 실질적 수단이 되었다. 이렇듯 아름다움의 의미는 시대의 미시적인 것들로부터 출발하여 거시적으로 변하는데, 현 사회의 미(美)는 그것이 미(美)인지 추(醜)인지 모를 마냥 단순한 도구가 되었다. 날씬하고 작은 얼굴, 고운 피부, 초롱초롱한 눈과 높은 콧날 등 사회상이 반영 된 균형 속에서 발견되는 외형적 아름다움은 이제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들에게 절실하다.

 

이 절실함은 아름다움의 지층 속 균열이 되어 지저분하게 꿈틀거리는 추(醜)의 씨앗이 된다. 그 극단에서 무형의 아름다움은 썩은 시체가 되고, 결국 의미없이 나풀거리는 어색한 가죽만이 남아있게 된다. 이것이 박제된 고무인형이냐, 사람이냐.  

 

 

순수한 미(美)의 칼날 위에서, 전재홍 감독의 <아름답다>는 관념적 미(美)가 한 여자의 생에 불러일으키는 재앙을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거친 호흡으로 그려나간다. 김기덕 원작답게 극단적인 상상력으로 발작에 가까운 행위들을 보여준다. 촬영 방식이나 컷의 수 등, 영화문법적으로 리얼리즘의 선을 타는 듯도 하지만, 김기덕의 세계가 반영 된 이상 사실적인 틈은 있을지 몰라도 결코 현실적이지는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기덕의 분신이 되어 연출한 듯한 이 영화는, 세련되거나 잘 정돈 된 이미지나 이야기는 없다. 거칠고 투박한, 김기덕의 피 묻은 손으로 단시간에 만들어내는 영화들도 예전과는 달리 어느정도 균형이 잡혀 문법적이다. 전재홍 감독 또한 <아름답다>를 보름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그 상처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름답다>의 군상들은 그녀를 파멸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어,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 그러나 이것이 스크린 위의 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미(美)는 결국 그 극단에서 독이 되어 스며든다. 아름다움을 구타한다. 허울뿐인 관념은 흰 자를 보이며 실신한다. 순수한 성욕을 더러운 욕정으로 만들고, 상호 간의 사랑을 소통없는 강간으로 변질시키는 아름다움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상처 뿐이다.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 사회적인 껍데기가 강간범을 만들어냈다. 그는 사랑했단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녀의 아름다움이 자신을 먼저 강간했다고 주장한다. 이제 순수한 미(美)도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다. 아름다움의 끝을 이성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성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가 아니면, 감정과 본능에 의해 판단되어 순간 그에게 야성을 부여할 것인가. 부여된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할텐데.

 

다소 어설프지만, <아름답다>는 고도의 정신에 위치하여 옹알이를 한다. 그 위치에서는 언어도 상실된다. 그렇다면 본질에는 무엇이 남을까.

 

철저히 작가적인 <아름답다>. 김기덕 원작이라는 명패만으로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베를린으로 가볍게 입성하였다. 뒤이어 나오는 또 다른 명패 '제 2의 김기덕'. 닮은 꼴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그를 만난 것 같다. 반갑다. 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서투르지만 매혹적인 몸짓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즐겁게 상처받았다. 어떻게 진화해나갈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두근거린다.

 

 

슬프다. 운명이 쥐어 준 아름다움이 가혹하다. 인간은 그 속에서 버겁다. 스스로 추(醜)를 그려나가야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주는 잔혹한 운명을 막아 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 大通 2008.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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